1946년 도쿄에서는 태평양전쟁의 전범을 심판하기 위한 '극동국제국사재판'이 열립니다.

나치 전범을 심판하기 위해 열린 '뉘른베르크 재판'과 여러모로 비슷한 면을 보이는 이 재판은,

맥아더가 불러 모은 11명의 판사들의 손에 맡겨지게 되죠.

뉘른베르크 재판이라는 명확한 선례대로 '6개월'안에 마무리될 것 같던 재판은,

뜻밖의 난관에 부딪히며 2년 이상의 시간을 축적한 재판이 됩니다.

영화 '스파이의 아내는' 태평양 전쟁 직전과 직후를 그리는 만큼,

전쟁 속에 놓인 인간의 모습을 면밀하게 보여주는데요.

이는 도쿄 재판이 길어지는 이유 중 하나인,

'개인에게 전쟁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라는 부분을 생각하면서  함께 감상하시면 좋은 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스파이의 아내에 나오는 사토코는 전범이 아닙니다.

여기서 칸초가 주목하는 부분은,

'전쟁 속에 놓인 개인'입니다.

유사쿠가 스파이로 적시된 시점에서 사토코의 선택은 제한적입니다.

유사쿠를 밀고하거나, 그와 함께 일본을 고발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거죠.

사토코는 유사코와 함께 가는 것을 선택했고,

선택에 대한 결과는 참혹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도쿄 재판'에서는

'전쟁의 책임을 개인에게 묻는 것이 정당한가?'라는 질문을 두고,

판사들 사이에서 논쟁이 벌어지는데요.

전쟁을 승인함으로써 다가올 결과를 두려워하면서도,

결국은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도 고려하자는 것이었죠.

반면 나름의 정의를 선택해도 원하지 않는 결말을 맡을 수 있습니다.

유사쿠는 나름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선택을 했고,

사토코는 유사쿠를 선택했기에 그의 정의도 함께 실현하기로 결심했죠.

전쟁이 내포하고 있는 결말 앞에서 개인은 한없이 위태롭습니다.

그럼에도 정의를 추종하는 개인의 선택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는 점은,

전쟁이 끝난 이후 평화를 찾아가는 세상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도쿄 재판의 주요한 쟁점은 '침략 전쟁을  범죄로 규정할 수 있는가?'입니다.

제국주의의 야욕을 품은 일본이 벌인 전쟁은 평화를 파괴한 침략 전쟁이지만,

이에 대해 처벌한 근거가 법으로 명확히 마련되어 있는지(죄형법정주의)가 

논쟁의 근거가 됩니다.(이는 일본 전범의 변호인단의 논리에 이용되기도 합니다.)

특히 인도 판사 라다 비노드 팔은 뉘른베르크 재판(나치 전범 재판)도 기준이 불명확한 재판이었다며,

재판의 시작부터 일본 전범의 무죄를 주장하는 원칙을 고수합니다.

여기서 야마모토 제독과 레이튼 소령이 대화를 나누던 격실로 돌아가 봅시다.

그들이 나눈 대화 속에는 분명히 전쟁의 징조가 보였지만,

아직 전쟁은 일어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 질문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은 전쟁을 해결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적 팽창을 지켜보며,

자국의 산업을 발전시키고 외부로 팽창하기 위해 '전쟁'이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에 따라 침략 전쟁을 감행하고 승전의 경험을 쌓아갈 때마다,

전쟁을 통해 제국의 길로 갈 수 있다는 믿음을 키워온 것입니다.

그들이 제국을 만드는 과정에서 희생된 식민지의 국민들 또한,

그들이 '선택한 전쟁'으로 인한 결과였지만,

'제국의 번영' 이외의 결과는 철저히 외면당합니다.

'도쿄 재판'에서 재판에 참여하는 중국과 필리핀의 판사는,

복수와 정의 실현을 구분하기 위해 애쓰면서도 자국이 입은 피해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합니다.

전쟁이 '선택 가능한 방안'의 범주에 놓이면,

전범들의 야욕에 비례한 비극적인 결말을 초래하기 마련입니다.

진주만 공습과 미드웨이 해전이 있기까지,

일본은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 벌였던 침략전쟁의 기억이 있습니다.

전쟁이 해결 방안이 될 수 없다는 선례를 만들지 않으면,

미래에 어떠한 전쟁이 다가올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도쿄 재판'에서 인도의 팔 판사가 펴는 논리를 듣고 반박하는 이들의 주장은 이러합니다.

원칙에 매몰되어 전쟁을 선택할 수 있게 만드는 결과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원칙보다 우선되어야 할 가치가 존재하는 것이죠.

'도쿄 재판'과 '미드웨이'는 수단으로서의 전쟁의 모습을 들여다보게 해줍니다.